가지런한 마음

나는 만능열쇠를 찾던 게 아니라

아른이arnee 2021. 6. 7. 12:37

 

이전 글에서 '지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잠깐 언급했다. 지금을 알아야 이후를 바꿀 수 있으니 당연하다. 실천하고 있음을 짧게 언급하고 지나갔지만 사실 실천은 말처럼 간단하고 단순하지는 않았다. 끊임없이 '지금을 파악하는 것'에 실패했다. '일과를 기록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조차도 잠들기 직전에 닥쳐서 하거나 뒤로 미루는 탓이었다. 잠들기 전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대부분은 가물가물하게 기억을 더듬다가 공백을 채우지 못한 짜증에 플래너를 덮기 일쑤였다. 의식의 흐름을 적자면 다음과 같았다.

 

아............. 나 퇴근하고 뭐 했지? 대충 오자마자 청소를 좀 한 것 같은데, 그다음은 밥 먹고 잠깐 쉰다고 드러누워서 유튜브를 봤다. 얼마만큼 봤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경제 영상과 생산성 영상을 같이 본 건 플래너에서 무슨 카테고리로 넣어야 하지? 휴식? 공부? 양심적으로 휴식으로 해야 하나? 그래도 많은 책이 기준을 낮춰서 시도를 반복하라고 하니까 공부로 넣을까? 아니 근데 그다음 시간대는 또 왜 이렇게 비지?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12시야... 12시에 잔다는 계획을 우선해야 해, 아니면 내일 일정 적고 자자는 계획을 우선해야 해? 지금 중요한 게 뭐지? 아니 근데 하루 일과 기록하다가 하루 다 가겠네!

 

그러다 보면 다짐보다 형편없는 '진짜 나'와 마주한 불편함을 곱씹으며 이불 속에서 몸을 둥글게 말게 된다. 하루를 추적하라는 조언은 많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록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는 모든 게 명확해 보여 좋아도 막상 실천으로 옮길 때면 디테일한 적용에 애를 먹었다. 예를 들어 기록 타이밍만 해도 누군가는 한 시간마다 진척사항을 적는다고 하고, 누군가는 귀가 직후 적는다고 했다. 전자를 해보자니 한 시간 되었다고 몰입을 깨고 플래너 적으러 가기가 어려웠고, 후자를 해보자니 기억에 남지 않았다. 바뀌어보려고 지금을 파악하려 해 본 건데 문턱에 들어서기도 전에 막막함이 앞서니 서글펐다. 다 큰 직장인이 어떻게 하루를 꾸릴지 막막해한다는 게 어쩐지 자존심 상하고 쭈굴거리는 스스로가 못나 보였다. 내가 바라던 어른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대로 익숙한 체념과 무기력의 늪에 빠지기는 참 쉬웠겠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가 없었다. 감이 좋은 내가 느끼기에 이 고비를 못 넘어서면 사회생활에 큰 지장이 올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짠 180도로 바뀌자는 게 아니라며 나를 좀 달랬고, 우선 시급한 건 이 바뀌고자 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안다. 이럴 때 고강도로 밀어붙이면 또 처음에 시도하다 말고 못 해먹겠다며 때려치울 내 성질머리를 안다. 최대한 쉽게 떠먹여 줘야 투덜거리면서라도 미적미적 끌려오는 나를 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전에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자기 계발서를 슬렁슬렁 다시 읽으며 최대한 나에게 부하가 가지 않도록 애를 썼다. 희한하게도 위기감을 잠재우고 단기간에 바뀌자는 강박을 버리니 몸에 힘이 쭉 풀리며 이전에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과는 다른 지점이나, 흘려들었던 메시지가 와닿았다.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 내게 필요했던 내용을 발견했을 때는 푹 꺼졌던 의욕이 다시 샘솟아났다.

 

답이 없는 상황에도 끝은 온다

 

이를 계기로 여지껏 갖고 있던 큰 오해를 하나 덜어냈다. 사람들이 과시용으로 자기 계발서를 읽는 줄로만 알았다. 정작 나는 모두에게나 들어맞는 만능 열쇠가 아니라, 지금 내가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실행하도록 등을 밀어주는 한 문장을 찾고 있었으면서.

 

어쨌든 그 뒤로는 좀처럼 말을 안 듣는 나와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느냐며 달래는 나의 사투였다. 우선은 다른 사람들을 최대한 벤치마킹하며 내가 가능할 법한 범위부터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메신저 카카오톡의 '나에게 메시지 보내기' 기능으로 어떤 것을 끝마쳤는지 메모해두면 정확한 시간을 포함해 마친 일정을 파악할 수 있어 좋다는 팁이 제일 유용했다. 어찌저찌 확인하며 쓰다 보니 플래너에 옮겨 적을 때 따로 대화창을 열어 확인하지 않아도 얼추 시간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는 파악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나는 여전히 플래너에 삐걱삐걱 오차를 만들어내며 페이지를 넘겨가고 있다. 이전이라면 공백을 못 견뎌 뜯어내려 했겠지만 이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공백에 붙여 대충 얼버무려도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마인드 컨트롤이 수월해졌다. 성장하는 스스로가 기특하다. 그런 의미로 가장 최근 밑줄 그었던 문장들을 소개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음.

 

 

사람들이 일을 미루는 이유는, 무언가를 해내려면 그에 적절한 기분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기분이 변할 것이기 때문에 미래야말로 행동에 나서기 더욱 적합한 때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일을 미루는 건 기분을 관리하려는 노력, 해야만 하는 일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는 노력 때문이다.
<미루기의 천재들>

일에 나를 끼워맞추지 말 것. 기분과 할 일을 분리할 것.

 

집중력을 만들어 내는 도파민은 어떤 행동을 시작하고 약 15분이 지나야 뇌에서 분비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에는 15분을 더해 계획을 짜는 것이 좋다. 30분 동안 집중이 필요한 일은 45분으로 시간 계획을 세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75분 동안 집중이 필요한 일은 90분으로 시간을 확보해 둔다. 이처럼 시간은 45분 단위로 관리하기를 권한다. (중략) 또 처음 계획과 실제로 소비한 시간의 차이가 얼마인지 기록해 두자. 처음에 적어 놓은 일정 오른쪽에 실제 걸린 시간을 습관적으로 적어서 비교하면 시간을 관리하는 데 효과적이다.
<일 처리가 빠른 사람들의 시간 관리 비밀>

여유있게 계획을 짤 것. 계획을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리뷰를 할 것('지금을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과도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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