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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알라딘 리커버 한정판) - ![]() 안희연 지음/창비 |
처음 <아침은 이곳을 정차하지 않고 지나갔다>를 마주했을 때, 나는 아주 오랜만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타인이라는 우주를 만나 스스로의 움발트가 깨어지는 느낌을 나누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쓴다던 어떤 작가의 말처럼, 안희연 시인의 시는 내 일상을 깨고 한동안 잊고 있던 시의 즐거움을 환기했다. 마음이 열렬해 보였는지, 여름에는 이 시집을 선물받아 품에 안고 다녔다.
이 한 권에서 들쭉날쭉한 삶을 느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리저리 뒹굴고 깎여 들쭉날쭉한 삶을, 감자마냥 엄지 손가락에 힘을 주어 뚝 떼어내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듯한 삶의 태도를 읽었다. 마냥 슬픔을 다룬다기에는 그 슬픔이 구체적인 길 위에 놓여있었고, 인간 내면을 까발려놓는다기에는 형용이 결코 섣부르지 않았다. 서글프고 소외된 시어들이 망설이면서도 삶을 기꺼이 살아가는 듯했다.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시는 <면벽의 유령>과 <사랑의 형태>였다. 다다를 수 있다는 믿음이 길을 주었고, 다다를 수 없다는 절망도 길을 주었다는 구절에 깊이 감명받았다. 그는 완전하고 빛으로 가득한 삶보다는 어딘가 결핍된 사랑(글로 가득 적어내려 책을 낼 정도라면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그는 시집에 늙고, 충혈되고, 버려지고, 움푹 패이고, 부러지고, 도려내지고 밟힌 것들을 그러모았다. 어림짐작으로 쓰다듬으려 하지 않고 그저 모아두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기분이 든다. 마주하기도 전에 기름칠해 등 뒤로 헐레벌떡 던져버리는 감정들이 어떻게 돌아오는지 충분히 경험한 내게는.
※그 / 그녀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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